[닥터 권 줌인]존엄사 vs 살인
존엄사(death with Dignity)와 안락사(Mercy Killing)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안락사는 ‘고통스런 불치병이나 신체질환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자연적인 죽음보다 훨씬 이전에 생명을 마감시키며, 질병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인 행위에 의한 죽음까지 포괄한다. 반면 존엄사는 의학적 치료를 했음에도 죽음이 임박했을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즉,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 약물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를 소극적 안락사라고도 한다. 현행 법률과 판례에서 ‘의료진은 환자의 생명을 단 1분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제시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중단시키기 위해 약물을 주입시키는 적극적 안락사와 인공호흡기를 떼고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 소극적 안락사를 미국에선 ‘사전의사 결정제도’로 인정하고 있다. 즉, ‘인간이 스스로 자의에 의해 죽음의 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이를 구속하지 못한다’고 하는 이율배반적이고 좀 혼란스런 규정인 것 같다. 오늘 저녁에 한국에서 대학 친구가 “친구야, 예쁜 우리 엄마가 어제 밤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라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순간 눈물이 핑 돌고 한국으로 당장 달려가서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근무할 땐 슬플 때나 기쁠 때, 아무리 멀어도 언제든 달려가서 서로 나누고 위로하던 친구다. 정확히 13년 전 2003년 4월의 일이다. 친구의 어머니는 그 때 정년 퇴직하시고 딸이 사는 곳을 잠시 방문하셨다가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코마(coma)상태가 되었다. 뇌 수술을 세 번이나 하셔서 그 미인이시던 어머니의 이마가 보기 흉하게 움푹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무의식 상태가 계속 되었고 친구는 어머니를 병원에서 자신의 집 안방으로 모시고 온갖 정성을 다해 어머니가 깨어나도록 도왔다. 물론 풀타임(full-time) 간호원을 고용했지만 코마 상태인 환자를 돌보는 것은 중노동이라 그들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결국 파격대우 즉, 출퇴근 9-5시, 주말은 휴가, 그리고 높은 연봉으로 어렵게 좀 오래 머무는 간호원을 어머니 곁에 둘 수 있었다. 저녁과 주말에는 친구가 학교에서 일이 끝나면 항상 어머니 옆에서 병간호를 했다. 친구의 병 간호는 그야말로 감동적이었다. 의식 없는 어머니를 의식 있는 사람을 대하듯 대화했다. 예를 들면, 내가 전화하면 “엄마, 내 친구야, 알지? 그 미국 유학한 친구” 라고 말하면서 나에게도 “어머니와 대화해 보라”고 했고 나도 “어머니 안녕하세요? 좀 어떠세요?”라고 인사 드리면서 무반응인 어머니였지만 그 친구가 평소에 하던 대로 나의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1년이 지나도 친구는 포기하지 않고 직장 가기 전에 그리고 돌아와서 어머니를 포옹하고 키스하면서 인사하고 저녁엔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어머니이게 자세히 들려 준다. 코마 상태인 어머니를 일으킬 때도 몸을 닦아 드릴 때도 갓난 아기 다루듯이 진정한 사랑으로 정성스럽고 부드럽게 돕는다. 2년이 지난 2005년 주위 사람들의 희망도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친구야, 딸이 아니면 이런 간호도 어려울 거야” 라며 친구는 포기하지 않고 정성껏 어머니를 간호했다. 2006년 2월, 코마상태로 3년을 침상에서 보낸 어머니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친구 어머니가 깨어나서 일어나신 것이다. 책도 읽으시고 식사도 하시고 약해진 다리 때문에 휠체어를 이용하시지만 행복해 보였다. 지난해, 2015년 9월,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머님은 농담으로 나에게 영어 인사를 하시면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13년 전에 친구 어머니에게 ‘생명 연장한 보조기구들’을 떼어 버렸다면 ‘존엄사’ 일까 아님 ‘살인’이라고 해야 할까? 내 조카도 초등 때 가족여행 중 교통사고로 1년간 코마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가 곁에서 회복을 기원하며 치료를 도왔고 1년 후에 다시 깨어나서 건강해졌다. 그녀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다. 인체의 신비를 대할 때마다 난 고등학교 천재 물리 선생님이 “우리가 배우는 모든 지식은 이 우주의 먼지 즉 점과 같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존엄사는 인간의술의 한계와 윤리 도덕적 문제로 아주 신중히 다루어져야 할 것이며 움직이는 모든 생명, 심지어 미물도 그리고 식물조차 그 생명은 소중하고 존중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